유통기한보다 3개월 더 숙성한 보틀
부모님 집에 내려가서 냉장고를 열었는데 깜짝 놀랬다. 겨울에 보내드렸던 술담화 겨울 한정판 막걸리인 보틀(보일러 틀어놨어)가 아직도 있던 것이었다. 유통기한을 보니 더 놀라웠다. 3개월이나 지나있었다. 맛은 괜찮을까? 과발효가 되서 큼큼한 향이 나는 건 아닐까?
엄마 : 저녁에 소고기 구워줄게
나 : 그럼 소고기 3cm 두께로 사와줘, 내가 구워줄게.
엄마 : 아빠는 소고기 얇은거 좋아한다. 얇은거 먹자.
나 : 소고기는 육즙인데 반은 두껍게 썰어서 사오면 안되?
엄마 : 얇은게 맛있다, 얇은걸로 사갈게
나 : (마음에 안듦) 알았어
어머니는 식탁 위에 불판을 가열하고 얇은 등심을 한 점씩 올리셨다.
엄마 : 옛날에는 소고기 다 이렇게 먹었다.
나 : 소고기가 비싸서 그랬나?
엄마 : 옛날엔 못 살았으니까 얇게 먹었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소고기를 해주시면 항상 이렇게 얇게 구워먹었다. 나는 얇은 소고기를 초장에 찍어먹는걸 좋아했다. 이번에도 초장에 찍어먹었는데 어렸을 적 생각이 나면서 참 맛있더라.
유통기한이 지난 보틀의 뚜껑을 열었다. 맛이 이상해지지 않았나 살짝 걱정되었다. 잔에 술을 따르고 냄새를 맡으니 내 걱정은 기우였다. 냄새가 정말 끝내줬다. 달달한 멜론, 참외, 요구르트 향이 끝내줬다. 술 맛은 갓 만든 보틀보다 훨씬 맛있었다. 만든지 얼마 안된 보틀은 알콜 부즈가 약간 느껴졌는데, 오랜 기간 숙성하니 알콜감이 확 사라졌다.
예전에 파운더스의 KBS 맥주(Breakfast Stout를 버번 배럴에 에이징한 맥주)를 1년동안 묵힌 것과 생산한지 얼마 안된 것을 비교 시음 해본 적이 있었다. 1년 숙성한 맥주가 훨씬 부드러워서 맛이 좋았는데, 오래 숙성한 보틀도 이와 비슷한 효과가 있었나보다.
전통주 소믈리에 수업 때 류인수 소장님께서도 알콜 부즈가 있을 경우에는 냉장고에 좀 더 숙성하면 괜찮아진다고 그러셨는데 진짜로 효과가 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부모님과 벌컥벌컥 다 마셔버렸다. 그나저나 다음에 또 언제 새로운 술담화 막걸리가 나오려나. 빨리 나오면 좋겠네.
'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다운 맥주 책 "크래프트 맥주" 를 읽고 (0) | 2022.06.06 |
---|---|
마크홀리 - 어메이징 브루잉의 첫 막걸리 (0) | 2022.05.15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 - 여자 친구가 만들어 준 호산춘 막걸리 (0) | 2022.02.16 |
핸드앤몰트 Y블랙IPL - 감각적인 라벨과 특이한 맥주 스타일 블랙 IPL! (0) | 2022.02.09 |
백련 맑은 술과 바로바로수산 밀치회, 통큰대게 랍스터 대게 (0) | 2022.02.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