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담화라는 전통주 스타트업 회사에서 프런트엔드 개발자로 일한 지 벌써 1년 9개월이 지났다. 처음 입사해서 어색한 인사를 나눴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다되어가다니 세월이 참 빠르다.
술담화로 이직하기 이전에는 프린터 대기업 회사에서 임베디드 개발자로 일했다. 술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어서 술담화로 이직했다. 700명 규모의 회사에서 40명 규모의 회사로 이직했다 보니 다른 점이 많았다. 회사에 이직한 지 2년이 다되어가는 지금 이전 회사 대비 어떤 게 다른지, 나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정리해보려고 한다.
1.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즐겁다.
일반적인 회사원은 일요일 저녁이 되면 출근할 생각에 괴롭다. 하지만 술담화에 이직한 이후 출근이 즐거워졌다. 물론 회사에 출근하고 싶어서 안달 날 정도는 아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연차 쓰고 쉬는 게 훨씬 좋다. 다만 회사로 출근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출근이 힘든 일이 아니게 되었다.
크레딧잡에 담화컴퍼니를 검색하면 퇴사율이 나온다. 최근 1년 퇴사율이 무려 7%이다. 이 수치는 크레딧 잡에서 알려주는 동종 업계 상위 1%가 아니라 모든 업계 통틀어서 상위 1%에 들지 않을까 한다. 퇴사율이 낮다는 건 그만큼 만족도가 높은 회사라고 볼 수 있다.
회사 생활 중에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일까? 사회생활하신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일이 힘든 것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가장 힘들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다녀봤던 회사들 중에 대인 관계 스트레스가 가장 적다. 이유는 무엇일까? 면접 때 좋은 사람을 잘 가려내서? 운 좋게도 이상한 사람, 소위 빌런이 없어서?
내 생각에는 소통이 많기 때문에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적다고 생각한다.
2. 소통의 기회가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속 터놓고 할 수 있다.
소통의 양은 얼마가 적당한가? 이에 대한 명확한 정답이 있다. 소통은 많을수록 좋다.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는 소통의 기회가 굉장히 많다. 팀장과의 1대1 미팅, 대표와의 1대1 미팅, 프런트엔드 팀 커피챗, 개발팀 커피챗, 매주 진행되는 전사 미팅, 분기별로 진행되는 전사 회고 미팅 등이 있다. 소통의 기회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불만이나 업무의 바틀넥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 문제 해결이 빨라진다.
소통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얼마나 속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 우리는 팀원, 팀장뿐만 아니라 대표에게도 불만이나 피드백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어떤 점에서 기분이 안 좋았는지, 아쉬웠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얘기한다.
직접 이야기하기 힘들다면 익명으로 제보할 수 있는 마음의 소리도 있다. 익명으로 제보한 내용은 전사 미팅 때 대표님이 꼭 답변을 해주신다. 사내의 불만도 경청하고 소통하려는 의지가 느껴져서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예전 회사에서는 이런 소통의 자리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참고 넘어가게 된다. 그러면 업무의 효율도 떨어지고, 안 좋은 코드를 작성하게 된다. 불만이 계속 쌓여서 이직을 생각하게 되는 직원들도 있었다. 불만을 해소하지 못하면 개인에게도 정신적으로 힘들어지고, 회사도 인력 유출이 발생하면 손해다. 누구 하나 끙끙 앓지 않고 힘든 점을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회사 차원에서 마련해주는 게 중요하다.
3. 회고 문화가 있다.
술담화의 가장 좋은 문화는 바로 '회고 문화'이다.
개발팀의 경우 2~4주의 스프린트 개발 기간을 갖는다. 스프린트란 단거리 달리기라는 뜻으로 단기간의 목표를 세워 개발 일정을 관리하는 것이다. 스프린트가 끝나면 KPT(Keep, Problem, Try) 형식에 맞게 이번 개발 프로젝트의 좋은 점, 아쉬운 점, 고칠 점을 개인별로 정리하여 다 같이 공유한다.
또한 여러 팀이 함께 진행했던 프로젝트도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모여 회고를 진행한다. 다른 팀과 일하다 보면 프로세스에 문제를 발견하게 되는데 회고를 통해 체계의 문제를 상당히 많이 고칠 수 있었다.
덤으로 회고를 하면 개인이 했던 일에 대한 히스토리도 정리할 수 있다. 내가 했던 일은 며칠만 지나도 까먹는데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회고로 정리하니 내 커리어를 기록하는데도 좋았다.
4. 능청스럽게 농담하는 것을 배웠다.
이전 대기업 회사의 업무 스타일은 공무원스러웠다. 딱 자기 할 일만 하고 퇴근하는 개인주의적인 회사였다. 업무 시간에 옆 자리 사람과, 점신 시간에 팀원 사람들과도 아무 말 없이 밥만 먹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사무실도 굉장히 조용했다. 퇴근할 때는 인사도 없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나간다.
지금 회사는 옆 자리 사람은 물론 저 멀리 다른 팀 사람과도 얘기를 나눈다. 웃긴 이야기로 깔깔 거리는 일도 많다. 사무실이 가끔 시끄러워지기도 한다. 퇴근할 때는 정시 퇴근하더라도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나간다.
최고로 대박은 회식 자리였다. 고깃집에서 전 직원이 회식을 했는데 세상에서 이렇게 시끄러운 곳은 처음이었다. 시끄러워서 귀가 너무 아팠다. 내가 록 페스티벌 꽤 많이 가봤는데, 어느 페스티벌보다 여기 회식 자리가 더 시끄러웠다. 고기를 서빙하고 구워주시는 알바 분들에게 죄송할 정도였다.
회사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대학 동아리 같은 느낌이다. 분위기만 따지면 대한민국 아니 세계 최고 탑급의 회사인 것 같다. 다른 회사에서는 가기 싫어하는 등산도 자진해서 다 같이 가기도 한다.
5. 회사에 애정을 가진 분들이 많다.
회사를 다니면서 자신의 회사와 회사의 서비스에 애정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편한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소위 '꿀 빤다'는 것을 좋아하거나, 경력 쌓고 이직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일하거나, 코드가 돌아가기만 하면 되지 뭐하러 더 좋게 바꿔하는 분들도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평범한 회사원의 모습이다.
술담화 직원분들은 회사의 서비스, 프로덕트에 애정이 많다. A/B 테스트를 통해 더 나은 UI를 모색하고, 구독 박스에 들어가는 술 퀄리티를 확인하기 위해 천여 박스를 직접 다 열어보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코드로 개발할지 모든 팀원이 열띤 토론을 하고, 하나의 프로젝트에 모든 팀이 달라붙어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 집중한다.
왜 회사 제품에 애정이 많을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회사가 좋기 때문이다.
첫째, 회사의 문화가 좋기 때문이다. 화, 목요일 전 직원이 재택근무를 한다. 직원들에게 자율을 주면서 동시에 책임도 묻는다. 직원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제도이다.
둘째, 회사의 좋은 동료들 때문이다. 모든 동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 개발도 열심히 하신다. 또한 함께 일하는 게 즐거운 분들이 많다.
회사에 애정이 생기면 오래 일하고 싶어 진다. 오래 일하려면 회사가 계속 잘돼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 업무에 책임감과 자부심이 생기고, 더 좋은 업무 역량을 위해 자기 계발을 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 이런 선순환이 유지되도록 회사에 대한 애정이 지속되면 좋겠다.
회사에 애정이 많다 보니 다 같이 으쌰 으쌰 파이팅!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팀원뿐만 아니라 타 팀에서 좋은 성과를 냈을 때 다 같이 축하해준다. 매주 금요일 다 같이 모이는 미팅에서 서로를 칭찬하는 글을 써서 공유하는 자리도 있다. 서로 응원하는 분위기 속에서 회사와 개인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6. 아직 체계가 부족하다.
처음에는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문서 없이 구두로만 전달받아서 개발했다. 이럴 경우 개발 스펙이 변경되었을 때 공유가 어렵고, 디테일한 부분을 기획자, 디자이너와 의견 나누기가 어려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획, 디자인, 개발 문서를 만들고 매 단계마다 관련된 부서 사람들이 미팅을 가졌다. 그래서 기획에서 디자인, 개발로 이어지는 프로세스는 체계가 많이 잡혔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큰 기업들에 비해서는 체계가 많이 부족하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기도 하고, 기획이나 디자인이 갑자기 바뀌기도 하고, 배포 일정이 연기되기도 하고, QA에서 놓치는 부분이 생겨 급하게 Hotfix를 배포하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회사 전반의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별도의 팀도 있다. 조금씩 이상적인 체계로 바뀌는 회사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7. 미래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잘 되리라 믿는다.
스타트업은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고, 어떤 모습으로든 변화할 수 있는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 반면 안정적인 매출 먹거리는 가야 할 길이 더 남았다. 나도 이런 불안정함을 감수해야 했기에 이직을 결정하는 게 쉽진 않았다.
외부의 요인에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코로나가 대유행했을 때는 홈술과 구독 경제가 트렌드로 주목받으며 담화박스 구독자가 크게 늘었다. 반면 코로나가 주춤하고 대면 모임이 많아지면서 구독자가 줄어들기도 했다.
주류 시장에서 전통주가 차지하는 규모가 아직 작다. 2021년에는 전통주가 전체 주류 시장의 1%를 넘기지 못했다.
요즘은 금리도 올라서 경기가 안 좋아져 작은 스타트업에게는 더욱 타격이 크다. 주변에서 들리는 구조 조정 이야기는 꽤 무섭다.
그럼에도 이 회사에 온 것이 후회되지 않는다. 나는 술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 주류 회사 중에 개발자를 뽑는 회사는 거의 없다. (왜냐면 아직 대기업에서 파는 술들은 온라인 배송이 안돼서) 그런 와중에 내가 가장 일을 활발히 하는 30대 초반에 술담화가 있고, 술담화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건 내 인생에 큰 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 내 삶의 주인이 된 느낌이 든다. 업무에 관련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하는데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즐겁다. 이를 통해 나와 회사가 함께 성장한다는 것을 체감한다.
회사에서는 구독뿐만 아니라 b2b(기업 구매)도 시작하면서 매출을 다각화하고 있다. 2022년에는 전통주가 전체 주류 시장의 1%를 차지하였고 전년 대비 50% 이상 급성장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어떻게 하면 전통주의 파이를 더 키울 수 있을까? 내년에도 전통주와 관련된 재밌는 일들을 많이 벌려보고 싶다.
8. 술담화 더 많이 사랑해주세요!
마지막으로 내가 다니는 회사 잠깐 홍보하겠습니다. 술담화는 사람들에게 "다채로운 술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는 회사입니다. (회사 비전이 내 마음에 쏙 듦) 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해 매달 술을 배송하는 구독 서비스가 있고, 전통주 소믈리에들이 엄선한 제품만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이 있습니다. 전통주에 진심인 콘텐츠를 만드는 술담화 유튜브와 브런치도 있습니다.
회사가 더 잘되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즐겁게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말이죠.
아래 만화에 술담화로 이직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총 3편까지 있습니다)
https://brunch.co.kr/@junha0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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